오늘은 동쪽 해안을 돌아보는 날.
날씨는 여지없이 쨍하다. 38도씨를 넘나드는 폭염. 악.
1132번 해안도로를 따라 신나게 달려본다.
첫 목적지는 저어기 보이는 저곳
바로 성산일출봉
줄줄이 이어진 행렬.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끝도 없다.
차라리 새벽에 올걸. 아니 차라리 오지말걸 후회되는 순간이다.
이래서 심하게 관광지스러운 곳은 싫었던건데.
그래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한 성산일출봉의 그 풍광을. 그 압도감을.
너무너무너무너무 더웠다. 너도나도 팔토시;
진서는 덥고 힘들어서 찡찡대기 시작했고,
그런 진서를 그가 내내 안고 올라갔다. 그 산비탈을.
아아. 그래도 오길 잘했다.
엄마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엄마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그래도 25개월인 제가 감당하기엔 역시 버겁네요 잉잉..
분화구 정상. 비밀스러운 감동.
끝도 없는 계단들은 또 다른 감동 -_-
배불뚝이 아줌마 오늘 제대로 운동한다 정말.
올라갈 때는 한참이지만 내려갈 때는 금방.
바다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좀 더 내려가 발이라도 담가볼까.
아. 시원하다...
바위에 기대어 발 담그고 찰방찰방
그렇게 30분 넘게 놀았나보다.
성산일출봉 근처로 점심 먹으러.
전복죽 맛있기로 유명한 집. 섭지해녀의집.
내장이 섞여 녹색 빛깔을 띠는 전복죽과 국물이 시원한 성게칼국수
국수 좋아라하는 진서 신났다. 성게 특유의 향이 정말 일품이다.
해산물 안 좋아하라하는 그는 시큰둥. 특히 전복죽은 거의 손도 안댔다. 그 맛있는걸. 쯔쯔..
차 마시러 왔다. 원래는 까페루마인에 가려고 했는데 일정변경.
또 왔다. 섭지코지 글라스하우스 내 레스토랑 민트.
라임향 페리에에 얼음 동동 띄워주세요.
진서는 또 두 손 모아 기다립니다..
빼빼로 꽂혀있는 망고빙수.
사실 망고빙수 먹으러 저녁에 롯데호텔에 갈까 고민하던 참였는데 마침 메뉴에 있었다.
가격에 비해서 맛은 그냥 보통.
필리핀에서는 흔하다는 그 망고가 여기에선 왜 그렇게 비싼건지.
그래도 경치 하나는 정말 좋구나.
민트 바로 옆에 있는 이곳,
지난 겨울에 못갔던 안도 다다오의 지니어스로사이에 왔다.
사실 자연 그대로의 천연관광지였던 섭지코지 일대를 통째로 사들여서
거대한 리조트단지를 만들어버린 모 기업에 대한 반감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래도 궁금했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만들었다는 그 공간들이.
진서는 잠이 들어버렸다.
그가 시원한 인포메이션센터에서 잠시 눈 좀 붙이면서 기다릴테니 보고 오라한다.
그래서 나만 사진기 들고 냉큼 들어갔다. ^____^
Genius Loci 지니어스로사이. 땅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뜻.
입구에 들어서면 제주도의 돌, 여자, 바람을 상징하는 정원들이 펼쳐져 있다.
돌무더기가 잔뜩 깔린 '돌의정원',
(한여름이라 꽃의 정원에 꽃은 안보인다.)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담으려는듯 '바람의 길'
돌문을 들어서자
양쪽 벽을 타고 물이 흘러내린다.
너머로 또 다른 문이 보인다.
그 문을 지나니 돌담 사이로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그 앞이 유채꽃밭이라고. 봄에 참 예쁘겠다.
미로처럼 되어있는 좁은 회랑을 쭉 따라서
점점 밑으로 내려간다.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니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는 홀이 나온다.
세 곳의 전시관에서
각각, '다이어리', '어제의 하늘', '섭지의 오늘' 이 전시되고 있었다.
갤러리 1. 다이어리
나무 한그루에서 잎이 피어나고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까지를 보여준다.
"Diary는 매순간, 하루하루가 쌓여서 삶을 이루는 시간 과정과
하나의 존재로서 규정되어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고.
명상으로서의 공간
전시실 마다 저렇게 아로마 향이 피워져 있었다.
갤러리2. 어제의 하늘
이번에는 바닥에 둥근 스크린에서 하늘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제의 하늘과 만나는 또 다른 기억의 풍경은 개별적인 풍경을 그려내며
오늘을 살고 있는 인간 삶의 순간과 여정을 이야기한다."
갤러리 3. 섭지의 오늘
성산일출봉의 모습을 일출에서부터 일몰까지 다양하게 보여준다.
" 실재 성산일출봉을 마주하고 있는 건축, 지니어스로사이의 창을 연상시키는 화면설치를 통해,
자연과 마주하고 있는 건축의 외부 공간이 내부로 들어와 마치 하나의 세계처럼 연결되는 시공간을 구성한 것"
생각할 수 있는 명상의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색달랐고
나에게 잠시나마 허락된 달콤한 휴식의 시간이었다.
뒤늦게 잠에서 깬 진서와 그가 합류했고, 서둘러 휘리릭 돌아본 후 다음 코스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외진 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옛날에는 삼달국민학교였던 이곳이 갤러리가 되었다고.
정원 곳곳의 아기자기한 조각상들.
생각하는 사람?
이런 분위기 참 좋다
당연히 그렇겠지만 작가의 삶이 담겨있는 사진들.
사진들마다 슬픔이 묻어나오는듯 아련한건 왜인지..
김영갑의 제주도.
진서는 또 열심히 뛰어다닌다.
그것도 재미 없어지니까 나가자고 보채기 시작한다.
차에 키 한 번 꽂아보겠다고 자리 차지하고 앉아있다.
바람의 제주도. 곳곳의 커다란 '바람개비'
진서가 많이 신기해했다.
1136번 도로 타고 리조트로 돌아가는 길에 예정에 없던 승마장에 들르게 되었다.
우연히 찾은 곳이라 이름도 기억 안난다.
빨간 조끼랑 모자랑 장화까지 다 빌려준다;
나는 임산부라 못타고 그랑 진서랑만 탔다.
처음에는 저렇게 앞에서 아저씨가 끌고 가볍게 걷고,
나중에 어른 혼자 달리게 해준다.
사실 진서는 많이 무서워했다. 무서우면서도 신기하고 약간은 재밌기도 하고 그랬던듯.
또 하루가 저물었다.
아침부터 강행군이었던지 다들 파김치 수준으로 피곤했고,
LPG 충전소 찾느라 진을 뺀 나머지(미리 충전을 안해서 차 길가에 서는줄 알고 조마조마)
저녁식사는 리조트 내에서 대충 라면 끓여먹고 말았다는 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