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 시내의 좁다란 몽키포레스트로드를 따라 10분쯤 올라갔을까. 굽이굽이 번화한 길을 지나 호텔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외진 곳에 차가 멈추었다. 입구에 나즈막한 불빛이 "KOMANEKA at BISMA" 간판을 비추고 있었다. 발리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곳. 그리고 그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던 곳. 코마네카 앳 비스마에 드디어 도착했다.
어두컴컴한 로비, 화려한 샹들리에
한 쪽에서는 발리 전통악기인 팅클릭을 연주하고 있었다. 또르르르.. 맑은 소리가 울려퍼진다.
카운터에 가서 이름을 대니 앞쪽에 마련된 소파에 편히 앉아 기다리라고 한다. 역시 소문대로 친절하고 살가운 미소.
은은한 조명, 편안한 분위기. 허리를 삐끗한 남편은 그 와중에도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기다리는 동안 차가운 타월과 웰컴티를 내어준다. 웰컴티는 시나몬티였는데 그러니까 우리말로 뜨끈뜨끈한 수정과 되시겠다. 저 막대기는 시나몬스틱. 웁스.. 사진 보면 알겠지만 네 잔 중 줄어든건 딱 하나 뿐. 그게 내꺼. 모두에게 외면당한 한여름의 뜨끈뜨끈하고도 슬픈 수정과 이야기.
유모차를 제외한 짐들은 이미 직원이 룸에 옮겨놓았다며 담당 버틀러가 우리를 룸으로 안내해주었다. 로비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1층으로 내려가는데 그가 씩 웃으며 한 마디 한다. "너희 원래 스위트룸 예약했지? 근데 우리가 빌라로 준비했어."
대.박.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찢어진 입을 애써 감추고.. 홍콩 여행 때 돌아오는 아시아나에서 비지니스로 업그레이드 된 이후에 최고의 대박 업그레이드가 아닐까.
짐짓 태연한 척 미소 띄우고 있다가 버틀러가 나가자마자 폴짝폴짝 꺅꺅 거리는 본인. 딸아이가 웃으며 묻는다. "엄마 왜그래? 응?" "너무 좋아서 그러지 꺅꺅." 잠들기 전까지 내내 그랬나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램프 아래 반짝이는 작은 상자 세 개가 놓여있다. 코마네카에서 투숙객에게 주는 선물인데 비누, 바쓰솔트, 바쓰오일이 옹종맞게 들어있었다.
아아.. 중앙에는 떡 하니 공주 캐노피 침대가.
이거슨! 허니무너들에게만 장식해준다는 그 장미꽃잎 장식!
엑스트라베드에도 살포시 얹어주는 센스.
욕실로 이어지는 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갑니다.
한 쪽에는 화장대가 마련되어 있고
양쪽 두 개의 세면대를 지나면
이렇게 아리땁고도 낭만적인 오픈형 욕조가 기다리고 있어요. 램프에 불 켜놓고 호들갑 떠는 중.
짐 풀면서 한껏 '오바'하는 동안 프론트에 여권 찾으러간 남편이랑 아이들이 친구를 데려왔다. :-)
더듬이 네 개가 선명한 왕달팽이. 태어나서 이렇게 큰 달팽이는 처음 봤다. 누가 달팽이를 느림보라 했던가. 눈 깜짝할 사이 순간이동 하는 능력자심. 방도 넓은데 기꺼이 하룻밤 재워드리겠어요. 하하.
시간이 금세 흘러 밤이 되었다. 사진 찍고 짐정리 하고 아이들은 꽃잎들을 모아 뿌려가며 놀고.. 발리에 도착하자마자 하루만에 장거리 이동한거라 모두들 피곤할텐데도 상상치 못했던 깜짝 선물에 잔뜩 설레어서.. 쉽게 잠들기 어려웠다.
놀랍게도 늘 입버릇처럼 발리 신행으로 꿈꿨던 모든 것들이 거기있었다. 목조 느낌의 풀빌라, 린넨 캐노피가 드리워진 네 개의 기둥달린 침대, 로맨틱한 욕조 그리고 커다랗게 돌아가는 실링팬, 한가로움.. 우연이 아닌 것만 같은 섬세한 선물, 감동 그리고 감사.. 잊지못할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