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아침.
눈꼽만 떼고 모자 푹 눌러 쓰고 아침밥 먹으러. 부시시.. 꾀죄죄..
아빠가 까주는 삶은 계란도 먹고, 씨리얼도 먹고, 밥도 먹고. 오물오물.
신라호텔 조식뷔페가 어땠냐하면 만족스러웠다.
여러 종류의 빵이 즉석해서 구워져 나왔고 음식 종류도 다양했다.
게다가 이곳은 유독 아이를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있다고나 할까. 친절하기까지 브라보.
다 먹었으니 이제 아빠 모자 쓰기 놀이나 해볼까.
느즈막히 가기도 했지만 조식시간 끝날 때까지 커피 마시면서 저러고 있었다.
그래. 저 때만해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었지 ㅠㅠ
눈만 빼꼼. 한 껏 무장해주시고 둘째날 첫코스로 Go.
날이 흐리다. 곧 비가 쏟아질듯.
제주도가 처음인 그를 위해서 알려진 관광지 몇 군데도 들르기로.
이 계단을 따라서 내려가면 뭐가 나올까요.
대포 주상절리(갯깍 주상절리라고 또 있더라),
이번에는 쪽빛 바다가 펼쳐져 있다.
사실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거라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돌아서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두 번째 코스로 이동.
바로 핀크스골프클럽 바로 옆 비오토피아. 여기 찾느라 좀 헤맸다(우리가 아니라 네비가 -_-).
포도호텔-핀크스골프클럽-비오토피아. 다 한 테두리에 묶인다는걸 몰랐다.
비오토피아는 말하자면 대한민국 상위 몇%, 쫌 있는 사람들의 별장쯤 되는 곳이더라.
하필 그런 곳에 왜 갔냐하면
바로 그 안에 박여숙갤러리와 이타미준의 세 미술관이 있기 때문.
원칙상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지만 융통성과 융통성 없음이 공존하는 곳이랄까.
경비원아저씨에게 박여숙갤러리에 왔다고 하니 웃으면서 들여보내주었다.
"이타미준 미술관은 볼 수 없는 건가요?" 하고 물어보자 안 된다고.
막상 들어가보니 박여숙갤러리는 닫혀있었고(주말에만 개방한다는데 설연휴라서 그랬던듯),
이타미준 미술관은 말이 미술관이지 본래가 비오토피아 주민들을 위한 개방형 조형물에 가까웠다.
경비원아저씨의 의미심장한 웃음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차로 한바퀴를 돌았는데도 도대체 그 미술관이라는 것들이 눈에 안보이는 거다.
결국 차를 세워두고 유모차에 레인커버 씌우고, 우산 쓰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비는 내리지. 날은 으스스 춥지. 진서는 유모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제주도를 상징하는 물, 바람, 돌, 땅의 네 가지 테마로 이루어진 '명상 공간으로서의 미술관'.
지도 한 장 없이 보물찾기하듯 그렇게 하나씩 찾아나갔다.
드디어 찾았다.
WATER 물 미술관
조심스럽게 가만 발을 내딯어본다.
뻥 뚫린 타원형 천장으로 하늘이 쏟아져 들어온다.
조용하고, 신비로운 기운마저 감돈다.
그 텅빈 지붕 아래의 사각 물캔버스 위에
그림 그리듯 빗방울이 퐁퐁 떨어진다.
정말. 정말 좋았다.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입구를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던 용머리 조각.
그가 유심히 봤던 모양.
물을 상징하는 듯한 거북이도 보인다.
다른 미술관들은 어디에 있니.
비가 와서 그런가 주변에 마주치는 사람 하나 없고 한적하니 좋았다.
비오토피아 중앙에 위치하던 생태공원.
겨울이라 좀 썰렁한 분위기.
또 하나 발견.
헛간처럼 생긴 나무건물 하나.
WIND 바람 미술관
목재 건물에 안은 비어있었다. 돌만 덩그러니.
그 안에 잠시 있어보면 왜 바람 미술관인지 알 수 있다.
시각적 요소들은 차단한 채
나무 틈새들 사이로 약간의 빛과 바람 소리만이 존재하는 곳.
두손 지중(地中) 미술관도 찾았다.
역시 용머리 모양의 손잡이
두 손을 모은 것 같은 모습의 갤러리.
다른 갤러리들과는 달리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전시실이 있다.
진서가 잠들어 있는 유모차는 1층에 둔 채 번갈아가면서 구경했다.
한국의 '탈'에 관한 전시
까만 대리석 바닥이 마치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연상시키는 듯 반짝거린다.
언 몸을 녹이고 다시금 움직여본다.
손가락이 감싸는 듯한 모양의 천장 유리창들
마지막으로 돌 미술관
돌이 아닌 암갈색의 '내후성강'이라는 금속판으로 지어졌다고.
끼이익.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두운 실내에 작은 창문만이 하나 있다.
창문 밖으로 저렇게 외부에 전시된 돌 조형물을 볼 수 있다.
돌 위에 돌을 얹고 있는 손
비가 와서 몰랐는데 저 너머로 원래 산방산이 보인다고.
만족스럽게 네 개의 갤러리 '감상'을 모두 마치고 이제 점심 먹으러.
포도호텔 클럽레스토랑.
브레이크타임 따로 없이 아무 때나 이용 가능하다.
창 밖 비오는 풍경
저기 희미하게 보이는 낮은 지붕들이 포도호텔 객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포도송이처럼 보인다는데..
저 자작나무숲 너머 경치는 하나도 안 보인다.
배고파요. 두 손 모아 기다립니다.
왕새우튀김우동.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는 우동은 처음 먹어봤다. 면발이 쫄깃-쫄깃.
정신없이 먹다보니 이미 새우는 사라지고 없음.
아직 수저질이 익숙지 않은 그녀
포크 쓰라고 하면 손으로 잡아서 저렇게 포크에 끼워서 먹는다는 -_-
어찌나 잘 먹던지 나중에는 저렇게 사발째 후루룩.
원래 두 그릇 시켰는데 진서가 잘 먹어서 왕새우튀김우동 하나 추가해서 또 먹었다.
점심 먹고 호텔 내부 잠시 산책.
이타미준의 손길이 여기저기서 느껴진다.
내부가 너무 어두워서 사진은 몇 장 못찍었다.
다른 투숙객에게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조용히 재빨리 구경하고 나왔다.
나중에 꼭 한 번 머물고 싶은 곳.
둘째날 마지막 일정은 호텔 내 수영장에서의 물놀이였는데 역시 사진 못찍었다.
윽.. 5D 말고도 똑딱이에 방수팩이라도 준비했어야했는데 귀찮아서 대충대충 다니다보니.
어쨌든 실내 수영장은 기대했던 것 보다 별로였지만
(아기들을 위한 풀은 너무 작았고 내부 풀장은 물이 차가웠다)
야외 자쿠지에 몸 담그고 밤하늘에 별보는 건 참 좋았다. 새로지은 건식 사우나도 마음에 들고.
한 두어 시간 수영장에서 놀고 근처에 저녁 먹으러 나갔는데
심하게 '관광단지음식점스러운' 그곳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생각보다 비싸기도 했고)
차라리 그 돈으로 호텔에서 먹는게 낫겠다싶어 다시 돌아왔다.
그냥 거기서 먹을껄 잘못했다.............
한식레스토랑에서 갈치조림이랑 갈치구이 정식 시켰는데 텍스포함 가격이 웁스.
그의 눈에서 레이저빔 쏟아지시고. 내내 투덜거리는 통에 민망해서 혼났다.
솔직히 된장찌개도 반찬들도 맛이 그냥 그랬다. 차라리 양식당엘 갔어야.
예전에 제주왔을 때 중문 근처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갈치를 정말 맛있게 먹었었는데 그 맛이 아니었다.
생물갈치에 소금 팍팍 뿌려서 숯불에 금방 구워내던 그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우리를 조금이나마 다독거려줬던건 역시나 준비된 서비스.
잠이 덜깬 진서가 울면서 난리치니 종업원이 와서 기다란 풍선으로 강아지를 만들어 건네준다.
게다가 밥을 통 먹질 않으려고 해서 미역국이랑 밥을 가져갈 수 있겠냐 부탁했더니
흔쾌이 룸으로 미역국이랑 밥을 올려보내준다고 한다.
나중에 웨이터가 룸으로 가져다준건 어른이 먹고도 남을 분량의 성게미역국과 밥 한그릇. 간단한 반찬까지.
별 것 아닌 것 같은 서비스에 가슴 훈훈해지는 순간.
둘째날도 이렇게 THE END.